
야마구치 모모에
山口百恵
1970년대 일본 가요를 대표하는 이름이면서, 스물한 살에 정점에서 스스로 무대를 내려온 가수입니다. 1972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해 이듬해 열넷의 나이로 데뷔했고, 초기에는 어린 소녀에게 아슬아슬한 가사를 부르게 하는 기획으로 팔렸습니다. 순진해 보이는 겉모습과 노래 내용 사이의 간극이 인기의 정체였는데, 정작 본인은 그 이미지에 위화감을 느끼며 노래에 대한 의욕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판을 바꾼 것은 본인의 선택이었습니다. 1976년, 아직 만난 적도 없던 작사가 아키 요코와 작곡가 우자키 류도 부부를 직접 지목해 「横須賀ストーリー」를 받았습니다. 소속사와 레코드사는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후 이 부부가 준 곡만 싱글과 앨범을 합쳐 예순아홉 곡에 이릅니다. 여기서부터 소리가 달라집니다. 달게 꾸미는 대신 낮은 자리에 무게를 두고 말을 던지듯 부르는 창법이 자리를 잡았고, 반주도 블루스와 록 쪽으로 거칠어졌습니다. 「プレイバックPart2」는 1절 도중에 연주가 아예 멎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구조여서, 방송국들이 곡이 끝난 줄로 오해받지 않도록 따로 손을 써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가사의 화자도 함께 바뀌었습니다. 남자에게 휘둘리는 소녀 자리에서 내려와, 제 뜻대로 살고 물러설 때는 미련 없이 물러서는 여자가 앞에 섰습니다. 이걸로 끝이냐고 되묻는 이별 선언이나 앞차에 대고 사람 우습게 보지 말라고 쏘아붙이는 장면이 그 태도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한편으로는 사다 마사시가 써 준 「秋桜」처럼 시집가는 딸과 어머니를 담담하게 그린 곡도 같은 시기에 나란히 놓였습니다.
대표곡은 방향을 바꾼 「横須賀ストーリー」와 「プレイバックPart2」, 그리고 마지막 무대에서 부른 「さよならの向う側」입니다. 1980년 10월 5일 부도칸 공연에서 이 곡을 끝으로 마이크를 무대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걸어 나갔고, 그 뒤로 다시 무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날 나온 마지막 싱글 「一恵」의 가사는 자란 동네 이름을 딴 요코스카 케이라는 필명으로 본인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