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조도
심규선(Lucia)곡 소개
격자창 사이로 수양버들이 제 몸을 떨고, 밤늦도록 잠 못 드는 여인이 노래에 기대어 웁니다. 첫 네 줄만으로 이 곡이 어느 시대 어느 방 안의 이야기인지가 정해집니다. 잔 꽃무늬를 수놓은 소맷부리를 동여매며 님이 오시길 빌던 철없는 소녀가 있었고, 그 소녀는 이제 어찌 잊으라 하십니까라고 되묻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화조도는 꽃과 새를 함께 그린 옛 그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노래는 그 화면을 가사로 옮겨 놓습니다. 1절에서는 「여인들이 소녀에게 꽃들이 새에게 부르던 노래」라 하고, 2절에서는 「사내들이 소녀에게 새들이 꽃에게 부르던 노래」로 짝을 뒤집습니다. 꽃과 새의 자리가 한 번 바뀌는 이 교차 안에, 같은 노래가 세대를 건너며 부르는 쪽과 듣는 쪽을 계속 바꿔 왔다는 사실이 담깁니다. 그리고 「누이는 어느새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네」에 이르러 사람은 끝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제목이 곧 결말인 셈입니다.
곡의 한가운데에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사랑을 구하지 말 지어라」라는 한 줄이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듣던 곡절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는 고백 다음에 오는 말이니, 스스로 깨친 교훈이자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문장입니다. 뒤따르는 「어떤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사랑을 몰라」가 그 훈계를 원망 대신 체념 쪽으로 밀어 놓습니다. 후렴이 되돌아올 때 그 빛나던 한 때가 그 짧았던 한 때로, 까맣게 잊힐 줄이 하얗게 잊힐 줄로 한 글자씩 바뀌는 것도 놓치기 아까운 대목입니다.
노랫말과 곡 모두 심규선이 썼고 편곡은 김진영이 맡았습니다. 2019년 10월에 나온 EP 「환상소곡집 op.2 [ARIA]」의 두 번째 곡으로, 이 음반은 앞선 「환상소곡집 op.1」에서 이어지는 환상극의 마무리로 기획된 연작입니다. Luci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2016년 말부터 본명을 쓰기 시작한 그는 자기 곡을 직접 쓰는 싱어송라이터이며, 그중에서도 이 곡은 한국적인 어법과 정경을 가장 멀리까지 밀고 나간 작업에 듭니다.
커뮤니티 가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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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 사이로 수양버들이 스스스스 제 몸을 떨면 밤이 늦도록 잠 못 이루는 여인은 노래에 기대어 우네 잔 꽃무늬가 가득 수 놓인 소맷부리를 동여맬 때 철없던 소녀는 내 님이 오시길 빌었다네 어찌 잊으라 하십니까 그 빛나던 한 때를 그저 다 잊으라 하면 까맣게 잊힐 줄 아십니까 나를 부르던 목소리 이제와 간 데 없고 새처럼 훨훨 날아가신 님이여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듣던 곡절의 의미를 알겠노라 여인들이 소녀에게 꽃들이 새에게 부르던 노래 너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사랑을 구하지 말 지어라 어떤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사랑을 몰라 안개 자락이 푸른 옥빛을 처마 위에 새기고 가면 뒷문 밖에는 잠 못 이루던 누이가 부르는 갈잎의 노래 비단 물결은 달을 따라서 세상을 두루 다니는데 누이는 어느새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네 어찌 잊으라 하십니까 그 짧았던 한 때를 그저 다 잊으라 하면 하얗게 잊힐 줄 아십니까 나를 만지던 손길은 이제와 간 데 없고 새처럼 훨훨 날아가신 님이여 떠난 님의 품에 안겨서 듣던 곡조의 의미를 알았노라 사내들이 소녀에게 새들이 꽃에게 부르던 노래 이미 돌아서서 가는 이에게 사랑을 부르지 말 지어라 어떤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사랑을 구하지 말 지어라 어떤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사랑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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