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카모리 아키나
中森明菜
1980년대 아이돌로 출발했지만, 곡과 무대를 스스로 쥐는 쪽으로 걸어간 가수입니다. 1981년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탄생!」에 세 번째로 도전해 그 프로그램 역대 최고점으로 합격했고, 이듬해 열여섯에 데뷔했습니다. 두 번째 싱글 「소녀A」는 당시 압도적이던 마츠다 세이코의 소녀다움에 맞세울 불량함을 입히려고 만든 곡이었습니다. 정작 본인은 이 노래를 싫어해 녹음을 거부했는데, 마지못해 부른 그 시큰둥함이 노리던 분위기를 그대로 만들어 냈습니다.
소리의 중심은 바닥입니다. 본인은 자기 작품에 전부 베이스와 베이스드럼의 중저역을 깔았다고 말했습니다. 뿌리로 꼽는 것도 오빠와 언니들을 통해 듣던 디스코와 소울입니다. 여기에 네 살부터 열네 살까지 배운 모던 발레가 겹칩니다. 당시 강사는 그가 플라멩코와 탱고 리듬에 올라타면 눈에 띄게 살아났다고 회고했는데,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부제를 단 이국적 리듬의 싱글과 정통 발라드를 번갈아 내놓는 배치가 여기서 나옵니다.
가사는 사랑이 끝난 뒤에 남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난파선」은 가토 도키코가 만들어 부르던 곡인데, 방송에서 마주친 가토가 당분간 자기는 부르지 않을 테니 대신 불러 달라고 청해 넘어왔습니다. 1985년부터는 앨범과 싱글을 직접 프로듀스했고, 음악 프로그램에 나갈 때는 머리와 의상은 물론 세트와 조명까지 미리 맞춰 두고 올랐습니다. 유명한 작가에게 곡을 받으면 그 이름을 빌리는 것 같다며 되도록 청하지 말아 달라고 스태프에게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대표곡은 「소녀A」와 「난파선」, 「DESIRE -정열-」입니다. 「미 아모레」와 「DESIRE -정열-」로 2년 연속 일본레코드대상을 받았는데, 여성 솔로 가수로는 처음이었습니다. 2010년에 활동을 무기한 중단했다가 2014년 말에 복귀했고, 지금은 다시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