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라 히바리
美空ひばり
미소라 히바리는 아홉 살에 데뷔해 쉰둘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래한 사람이고, 그 시작의 이상함이 그대로 정체성이 됐습니다. 요코하마 생선가게 집 딸이던 아이는 아마추어 노래자랑 예선에서 떨어졌습니다. 못해서가 아니라 잘해서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잘하지만 아이답지 않다는 이유로 끝내 그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어른의 노래를 어른처럼 부르는 아이라는 위화감은 오래 그를 따라다녔고, 동시에 그가 다른 누구와도 겹치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소리의 뿌리는 스승에게서 왔습니다. 열한 살의 그를 무대에 올린 보드빌리언 가와다 하루히사 곁에서 후시마와시, 곧 가락을 굴리고 늘이고 꺾는 방식을 통째로 익혔습니다. 훗날 성문 감정에서 두 사람의 창법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올 만큼 깊이 밴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장르를 가리지 않는 폭이 얹힙니다. 정식 레코드 데뷔곡은 부기우기였고, 뱃사람 노래와 재즈, 가요곡, 엔카를 같은 목으로 소화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음정은 후대 뮤지션들이 지금도 첫손에 꼽는 그의 강점입니다.
부르는 세계는 항구와 술과 한 사람의 인생입니다. 「港町十三番地(항구 마을 13번지)」, 「悲しい酒(슬픈 술)」, 「リンゴ追分(사과 오이와케)」처럼 오래 불린 곡들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川の流れのように(강물의 흐름처럼)」가 놓입니다. 몸이 무너지던 시기에 녹음한 이 곡은 다른 곡을 밀던 스태프를 그가 직접 설득해 싱글로 낸 노래였고, 발매 다섯 달 남짓 뒤인 1989년 6월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해 7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민영예상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