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미
거미는 한국 R&B 여성 보컬의 앞줄에 서 있는 가수이자, 드라마 주제가를 가장 많이 불러 온 목소리입니다. 본명은 박지연이고, 예명에는 크고 아름다워지라는 뜻과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원래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려 했지만 외환위기로 유학길이 막혔고, 고등학교 축제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진로를 바꿔 연습생이 되었습니다. 2003년 1집 「Like Them」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런데 데뷔 두 달 만에 성대 결절이 왔습니다. 1집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도 못한 채 약 1년을 재활에 썼고, 2004년 2집의 「기억상실」로 첫 음악 방송 1위에 오르며 돌아왔습니다. 지금의 목소리는 이 시기를 지나며 다듬어진 것입니다. 허스키한 질감에 호소력이 실린 중저음이 바탕이고, 피아노로 다져진 기본기 위에 발성이 얹혀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구간에서도 문장이 또렷하게 서 있습니다.
부르는 사랑은 대체로 어른의 것입니다. 2005년 3집에 실린 미드템포 곡 「어른 아이」는 다 자란 척하지만 이별 앞에서는 결국 아이가 되고 마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최갑원이 노랫말을 쓰고 김도훈이 곡을 만든 이 트랙은 타이틀곡이 아니었는데도 그의 대표곡 자리에 올랐고, 이런 어긋남과 뒤늦은 후회가 이후 곡들에서도 반복됩니다.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드라마 주제가입니다. 2016년 「태양의 후예」의 「You Are My Everything」, 2019년 「호텔 델루나」의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처럼, 장면의 감정을 대신 말해 주는 자리에 그가 거듭 불려 왔습니다. 본인은 배역과 자기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제안을 고사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OST 여왕이라는 별칭은 그렇게 쌓인 결과입니다.



